- Notes
- 2024.08.
There are some moments when I feel that me and my works are 'side by side'. For example, when I wash the drapes that I packed my artworks and the dusty clothes that I wore in the same washing machine on the day of their installation in the gallery. In a place where the devices that protect each of us come together, a sense of homogeneity is palpable, that we are all materially decaying beings.
나와 내 작품들이 '나란히 놓여있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예를 들어 작품을 전시장에 설치하고 온 날, 작품을 포장했던 보자기와 내가 입었던 먼지 묻은 옷을 같은 세탁기에 넣고 빨래할 때. 각자의 몸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들이 한데 모이는 장소에서 모두가 물질적으로 붕괴해가는 존재라는 동질감이 만져진다.
- 2023. 09.
I have seen with my own eyes how disease works on a life of my families since I was six years old. Their bodies and mine are suspended on a double-helix ladder. Statistics elevate the word family history. Every time I go for a medical check-up, I'm told where to look and what numbers to look for if I have such families. My body becomes an imprinted fossil of the bodies of my loved ones who are diagnosed with a sufficiently high probability of disease.
I'm afraid that the imprinted information won't find its way down into my tissues and blood vessels and become imprinted, or that it already has and I'm missing clues. I feel like I've done something wrong when my urine is foamy or sleepy right after eating. The day I went into shock in front of the biopsy machine, the word ‘health anxiety’ stuck in my throat. None of things were confirmed that the experiences of my families would be repeated in my body. Nevertheless, the body narratives of others that I experience are not entirely second-hand experiences because I am thier child and I am accumulating a strong sense of body awareness.
6살 때부터 밀접한 지인들의 몸에 나타난 질병들이 삶의 단위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육안으로 경험하고 있다. 그들의 몸과 나의 몸에는 이중 나선 구조의 사다리가 걸려 있다. 통계는 가족력이라는 단어를 들어 올린다. 성인이 돼서 건강검진을 받으러 갈 때마다 그렇고 그런 이야기가 있다면 어느 부위와 무슨 수치를 신경 쓰라고 듣는다. 나의 몸은 질병이 충분한 가능성의 크기로 멍울져있다는 진단을 받는, 사랑하는 이들의 몸이 눌러 찍힌 음각 화석이 된다.
음각화된 정보가 조직과 혈관으로 내려와 양각화되지는 않을지, 혹은 이미 그러한데 단서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 소변에 거품이 많거나 밥을 먹고 잠이 몰려오면 무언가 잘못했다는 기분을 느낀다. 조직 촬영 검사 기계 앞에서 쇼크가 왔던 날에는 건강염려증이라는 단어가 목에 걸렸다. 사랑하는 이들의 경험이 나의 몸에서 그대로 반복될 리는 없다. 그럼에도 다소 이른 나이부터 목격 중인 타인들의 신체 서사는 내가 그들의 가족이기에 온전히 간접적이지 못한 경험으로, 몸에 대한 예민한 감각으로 축적된다.
- 2021. 12.
The science of predicting the future sings about gene therapy, cyborg, and the end of cancer. Perhaps even an already unstable body will reach such a relaxed state. However, provocative prophecies still determine the premise that we are hungry, sick, and aging. Everyone's experience of not owning a perfectly healthy body will lose the effect of empathy the moment the prophecy crosses the singularity. When someone's body already took off its mask and watched soccer, someone stopped breathing and was buried in an empty space. The benefits of science run disproportionately around the Earth. While the physical gap between me and you continues to widen, I hope that we can sympathize with each other a little more by fumbling with the fundamental imperfections of the body that the prophecy has yet to root out.
앞날을 점치는 과학은 유전자 치료, 사이보그 그리고 암의 종말을 노래한다. 어쩌면 이미 불안정하게 설계된 몸도 그런 홀가분한 신체 상태에 도달할지 모른다. 하지만 자극적인 예언은 아직 우리가 배고프고, 아프고, 늙어가고 있다는 전제를 가려나간다. 완벽하게 건강한 몸을 소유하지 못했던 모두의 경험은 예언이 특이점을 넘어가는 순간 공감의 효력을 잃어버릴 것이다. 이미 누군가의 몸이 마스크를 벗고 축구를 관람할 때 어느 누군가는 숨이 멈춰 공터에 묻혔다. 과학의 수혜는 지구 한바퀴를 불균형하게 뛰어간다. 나와 당신의 신체적 간극이 자꾸만 벌어져 가는 가운데, 그럼에도 예언이 아직 뿌리 뽑지 못한 몸의 근본적 불완전함을 더듬어 서로의 삶을 조금 더 공감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 Perspectives reflected in my work.
* I think both the work and the human being are transitional objects. So we also deal with drawing, esquis, and material experimental results as part of the work, and we look at them as a hierarchy equivalent to the final work. Even works that were previously thought to have been completed will be boldly added to the new progress from that state as needed. Likewise, I think humans should try new things if they feel the need. In the end, I think both the work and the human can be as cool as possible or as lame as possible, so you can feel nervous.
* The year of production of the work is viewed as the same as the year of birth rather than the time of completion. And I don't think there's an absolute need to fix the state of the work in the way it was first created. I look at the work as an object that can be big, sick, treated, recovered, and changed.
* Lifespan of all physical objects is purely luck-based. So instead of sticking to the durability and preservation of the work, the focus is on reproducing the physical properties of the body that you want to talk about as the "body of the work." As a result, rather unstable substances such as wax, oil, cosmetics, and natural objects are also tested with materials. If you're lucky with your work, you'll take over all the prosthetic devices you need and the hands of a diligent artist and remain physical for a long time. I don't think human lifespan has a causal relationship that is completely consistent with the durability of the body.
- 작업에 반영된 관점들
* 작품과 인간 모두 과도기적인 대상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드로잉, 에스키스, 재료 실험 결과물 또한 작업의 일부로 다루고 최종 작품과 동등한 위계로 바라봅니다. 기존에 완성했다고 생각했던 작품도 필요에 따라 그 상태에서부터 새로운 진행을 과감히 추가합니다. 인간도 이와 마찬가지로, 필요성을 느낀다면 꼭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작품과 인간 모두 얼마든지 멋있어질 수도, 얼마든지 구려질 수도 있기에 긴장감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작품의 제작 연도를 완성 시점보다는 출생 연도와 같은 것으로 바라봅니다. 그리고 처음 만들어진 시점의 모습으로 작품의 상태를 고정할 절대적 필요성이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작품도 크고, 아프고, 치료받고, 회복하고, 변화할 수 있는 대상으로 바라봅니다.
* 모든 물리적인 대상의 수명은 순전히 운에 따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작품의 내구성과 보존성에 집착하는 대신 이야기하고자 하는 몸의 물리적인 성질을 ‘작품의 몸’으로 재현하는 데 초점을 둡니다. 이에 따라 밀랍, 기름, 화장품, 자연물 등 다소 불안정한 물질도 재료로 실험합니다. 작품의 운이 좋다면 필요한 보철 장치와 부지런한 작가의 손길을 모두 이어받아 오랫동안 물리적인 상태를 유지할 겁니다. 인간의 수명도 이와 마찬가지로 신체의 내구성과는 완전히 일치하는 인과관계를 가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